바르는 레티놀은 왜 주름과 여드름에 두루 듣고 초기엔 오히려 피부가 뒤집어진다고 할까?
By Dr. Kim5 min read

화장품 성분표에서 레티놀이라는 이름을 한 번쯤은 봤을 겁니다. 주름 크림에도 들어 있고, 여드름 연고에도 들어 있습니다. 하나의 성분이 완전히 다른 두 가지 고민에 함께 쓰인다는 게 신기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막상 발라보면 처음 3일에서 7일은 피부가 오히려 벌겋게 뜨고 각질이 하얗게 일어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좋아지려고 바른 건데 왜 먼저 뒤집어지는지, 그 안에서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순서대로 짚습니다.
레티놀은 피부 안에서 어떤 역할을 할까요?
레티놀은 비타민 A 계열의 성분을 통틀어 부르는 이름이고, 이 계열을 레티노이드라고 합니다. 레티놀, 레티날(레티날데하이드), 트레티노인(레티노산)이 모두 여기 속하는데, 셋 다 피부에 흡수되면 최종적으로 레티노산이라는 형태로 바뀌어야 실제 효과를 냅니다.
레티놀은 세포 안에서 두 단계를 거쳐 레티노산으로 변환되고, 레티날은 한 단계만 거치면 되며, 트레티노인은 이미 변환이 끝난 최종 형태입니다. 단계가 적을수록 효과는 빠르고 강하지만 그만큼 자극도 셉니다. 그래서 트레티노인은 병원 처방약으로, 레티놀은 순한 화장품 성분으로 쓰이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트레티노인을 처음부터 매일 바르면 순한 레티놀보다 자극이 훨씬 크게 느껴지는데, 바로 이 변환 단계 차이 때문입니다.
세포 교체를 빠르게 만드는 원리는 무엇일까요?
레티노산은 피부 세포 안으로 들어가 세포핵 속에 있는 레티노산 수용체(RAR)라는 단백질에 달라붙습니다. 이 수용체는 세포 안의 스위치와 비슷해서, 레티노산이 붙으면 세포 분열과 관련된 유전자들이 켜집니다.
그 결과 피부 가장 아래층인 기저층에서 새 세포가 더 빨리 만들어지고, 표면의 오래된 각질세포는 더 빨리 떨어져 나갑니다. 컨베이어 벨트의 속도를 높인다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벨트가 빨리 돌면 낡은 부품이 더 빨리 치워지고 새 부품이 더 빨리 그 자리를 채웁니다. 원래 각질 턴오버에는 한 달 가까운 시간이 걸리는데, 레티노이드를 바르면 이 속도가 눈에 띄게 빨라집니다.
이 과정 덕분에 색소가 쌓인 오래된 세포, 모공을 막고 있던 각질 덩어리가 평소보다 빠르게 교체됩니다. 여드름에서 레티노이드를 쓰는 이유도 여기 있습니다. 모공 입구가 각질로 좁아지면서 피지가 갇혀 여드름이 시작되는데, 각질 턴오버가 빨라지면 모공이 막히는 속도 자체가 줄어듭니다.
콜라겐을 더 만들게 하는 기전은 어떻게 작동할까요?
주름을 개선하는 효과는 세포 교체와는 다른 경로에서 나옵니다. 레티노산은 피부 속층인 진피에서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합니다.
첫째, MMP(콜라겐을 잘라내는 효소, 콜라겐 가위라고 생각하면 됩니다)라는 물질이 만들어지는 것을 억제합니다. 자외선을 쬐거나 나이가 들면 이 가위가 더 많이 활동하면서 콜라겐을 잘게 잘라내는데, 레티노산이 가위 생산 자체를 줄여서 콜라겐이 덜 파괴되게 만듭니다. 예를 들어 자외선을 오래 쬔 피부일수록 가위 활동이 더 늘어 콜라겐이 계속 잘려나가는데, 레티노이드를 꾸준히 바르면 그 가위 활동이 줄어들면서 콜라겐이 쌓이는 속도가 파괴되는 속도를 앞지르게 됩니다.
둘째, 진피에서 콜라겐을 만드는 섬유아세포를 직접 자극해 새 콜라겐(피부를 받치는 기둥 같은 단백질 섬유)을 더 많이 생산하게 합니다. 가위를 줄이면서 동시에 기둥을 더 짓는 셈이라, 바르기 시작하고 12주에서 24주에 걸쳐 진피가 두꺼워지고 잔주름이 얕아지는 방향으로 변화가 쌓입니다.
왜 처음 바르면 오히려 피부가 뒤집어질까요?
이 부분이 레티노이드를 쓰다가 가장 많이 포기하는 이유입니다. 원인은 앞서 설명한 세포 교체 속도와 그대로 연결됩니다.
각질 턴오버가 갑자기 빨라지면, 피부 표면의 각질층(외부 자극과 수분 증발을 막아주는 보호막)이 새로 채워지는 속도보다 벗겨지는 속도가 먼저 빨라집니다. 보호막이 일시적으로 얇아지니 수분이 더 쉽게 날아가고, 그 자리로 자극 물질이 더 쉽게 들어옵니다. 그래서 붉어짐, 따가움, 하얀 각질이 함께 나타나는데 이 시기를 흔히 레티노이드 적응기라고 부릅니다. 비유하자면 낡은 벽지를 다 뜯어내고 새 벽지를 붙이는 리모델링과 비슷합니다. 뜯어낸 직후 아직 새 벽지가 안 붙은 짧은 시간 동안은 맨벽이 그대로 드러나는 것처럼, 피부도 이 기간에는 보호막 없이 맨살이 드러난 상태가 됩니다.
여드름 부위에서는 조금 다른 현상도 겹칩니다. 피부 속에서 이미 만들어지고 있던, 아직 눈에 보이지 않던 작은 여드름씨(미세면포)가 턴오버가 빨라지면서 한꺼번에 표면으로 밀려 올라옵니다. 안 그래도 생길 예정이었던 것들이 시기만 앞당겨져 몰려나오는 것이라, 실제로는 나빠지는 게 아니라 지나가는 과정인 경우가 많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럼 얼마나 지나야 진정될까요?
피부가 새로운 턴오버 속도에 맞춰 각질층을 다시 두껍게 채우는 데는 보통 2주에서 4주가 걸립니다. 이 기간을 넘기면 표면이 그 속도에 적응하면서 자극 증상은 가라앉고, 대신 세포 교체와 콜라겐 생성 효과는 그대로 이어집니다. 각질층 한 켜가 새로 만들어져 자리를 잡기까지는 원래 그만큼의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아무리 조급하게 굴어도 이 기간 자체를 앞당길 수는 없습니다.
문제는 이 적응기를 못 넘기고 중단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처음부터 세게 시작하기보다, 자극을 줄이면서 천천히 밀어붙이는 방법이 필요합니다.
자극 없이 단계적으로 적응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아래 방법들은 결국 하나의 원리로 통합니다. 각질층이 벗겨지는 속도와 새로 채워지는 속도를 최대한 비슷하게 맞추는 것입니다.
- 낮은 농도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습니다. 처음부터 고농도를 쓰면 각질층이 벗겨지는 속도가 재생 속도를 크게 앞질러서, 적응 자체가 실패로 끝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 매일이 아니라 이틀에서 사흘 간격으로 바르며 몸이 적응할 시간을 주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세포 교체 속도가 급격히 오르내리지 않고 서서히 올라가야 각질층도 그 속도를 따라잡을 수 있습니다.
- 보습제를 먼저 바른 뒤 그 위에 레티노이드를 얹는 방식(버퍼링)을 쓰면 흡수 속도가 느려집니다. 보호막 역할을 하는 보습제 층이 레티노산이 한 번에 깊이 들어가는 것을 막아주기 때문에 자극이 한결 줄어듭니다.
- 밤에만 바르고 낮에는 자외선 차단제를 함께 쓰는 것이 중요합니다. 레티노이드로 얇아진 각질층은 자외선에 더 민감해진 상태라서, 낮 시간 자외선 노출이 자극과 색소침착으로 이어지기 쉽습니다.
이 네 가지를 같이 지키면 자극은 최소화하면서도 세포 교체와 콜라겐 생성이라는 본래 효과는 그대로 얻을 수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처음 2주는 붉음이나 각질이 조금 있어도 자연스러운 과정이라고 받아들이고, 오히려 무리하게 매일 바르며 밀어붙이지 않는 편이 장기적으로 더 빨리 목표 농도와 빈도에 도달하는 길입니다.
농도를 올릴 때도 한 번에 크게 뛰지 말고, 지금 쓰는 농도에 자극 없이 적응한 뒤 한 단계씩 올리는 방식이 안전합니다. 세포 교체 속도가 급하게 바뀌지 않아야 각질층도 그때그때 재생을 따라잡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미백·각질 성분과 같이 써도 될까요?
AHA나 BHA(각질을 녹이는 산성 성분), 벤조일퍼옥사이드처럼 그 자체로도 자극이 있는 성분을 레티노이드와 같은 시간대에 겹쳐 바르면 각질층이 이중으로 얇아지면서 자극이 크게 늘어날 수 있습니다. 적응기에는 이런 성분과 시간대를 나누거나, 사용 빈도를 줄이는 편이 안전합니다. 예를 들어 밤에 레티노이드를 바르고 아침에 고농도 각질 제거 토너까지 얹으면, 하루 안에 각질층이 두 번 얇아지는 셈이라 자극이 겹쳐서 나타나기 쉽습니다.
반대로 나이아신아마이드처럼 피부 장벽을 보강해 주는 성분은 레티노이드와 함께 쓰면 자극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고 보고됩니다. 장벽이 튼튼해지면 각질층이 얇아지는 시기에도 수분 증발과 외부 자극 유입이 덜해지기 때문입니다. 적응기를 지나 피부가 안정된 뒤에는 다른 활성 성분과의 조합 폭도 자연스럽게 넓어집니다.
여름철 강한 자외선 아래에서는 레티노이드 자극이 평소보다 심해질 수 있어서, 계절에 따라 농도나 빈도를 잠시 낮추는 조절도 도움이 됩니다. 임신이나 수유 중에는 트레티노인 같은 처방 레티노이드 사용을 피하고 병원과 상담하는 것이 안전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References
Korean Dermatological Association, Ministry of Food and Drug Safety (MFDS), American Academy of Dermatology (AAD), and U.S. Food and Drug Administration (F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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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this article
진료하는 미용 의사가 작성했으며 일반적인 교육 목적입니다. 개인별 의학적 조언을 대체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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